시장길에서 만난 철학
“시장길에서 만난 철학 — 무게 없는 삶의 지혜”
시장이라는 공간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철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철학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어느 토요일 아침, 마당에서 쌀뜨물을 버리고 있던 아주머니의 말에서, 국밥집에서 김을 나르던 할아버지의 손짓에서, 나는 무거운 철학서에서조차 찾지 못했던 삶의 진리를 마주했다.
1. 고등어 앞에서의 관용
“이건 살 좀 봐. 오늘은 진짜 싱싱하지.”
고등어를 가리키며 외치는 생선 아주머니.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눈으론 다른 쪽 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웃으며 말한다.
“갈치도 좋아. 근데 오늘은 내가 고등어 좀 많이 샀어.”
강요하지 않았다. 억지 부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나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살짝 내비쳤다.
아, 이것이 바로 ‘관용’이 아닐까?
내 생각만 옳다고 우기지 않고, 상대의 시선도 존중하면서 자신의 사정도 전하는 방식.
어느 철학자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시장의 언어.
2. 떡집 노인의 ‘존재의 이유’
떡집 앞에 쪼그려 앉아 인절미를 뒤집고 있던 노인.
“이걸 왜 손으로 뒤집으세요?”라는 내 질문에
그는 나지막히 말했다.
“기계가 하면 빨라. 근데 맛이 달라. 난 아직 이 손이 남아 있으니, 써야지.”
무겁지 않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엔 깊은 의미가 있었다.
‘나는 쓸모가 있어서 존재한다’는 자각.
그리고 그것이 삶의 이유가 된다는 확신.
존재의 이유를 묻던 철학자들이 있었다면,
이 노인은 인절미 하나로 그 답을 보여주고 있었다.
3. 콩나물 값 흥정에서 만난 ‘상호성’
콩나물 500원치 달라는 내 말에
할머니는 봉투에 콩나물을 가득 담아주며 “이건 덤이여” 하고 웃는다.
나는 얼떨결에 “감사합니다”를 세 번이나 연발했다.
그러자 그분은 말했다.
“내가 주면, 또 누가 날 챙겨줘.”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시장에서 덤은 단순한 인심이 아니다.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상호성의 증표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순환하고, 그 안에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
시장길은 자본주의를 넘어서 ‘인간 경제학’이 작동하는 공간이었다.
4. 시장 골목 국밥집의 ‘시간 철학’
시장 끝 골목 국밥집에서 나는 순댓국 한 그릇을 시켰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국을 데운다.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조용하다.
나는 조금 초조해지려는 찰나, 갓 삶은 순대를 손질해 담는 그의 손을 보았다.
빠르진 않지만, 정확하고 정갈하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에게 ‘시간’이란 빠르기의 문제가 아닌, 정성의 문제였다.
속도를 요구하는 시대에서, 그는 ‘느림’이야말로 최고의 맛을 만든다는 철학을 지키고 있었다.
5. 삶의 무게를 나누는 곳, 시장
시장길은 삶의 철학이 흘러넘치는 사유의 거리다.
여기서 사람들은 돈을 주고받는 동시에,
고단한 하루를 나누고, 쓸쓸함을 위로하며, 때로는 희망까지도 사고판다.
매일 아침 시장을 여는 구수한 목소리,
퇴근길 사가는 단무지 한 통,
덤으로 받은 깻잎 몇 장,
그 안엔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살아내는 사람들만이 아는 철학이 녹아 있다.
“시장길에서 만난 철학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을 중심에 놓는 사유였고,
관계로 이어지는 거래였으며,
무게 없는 손끝에 담긴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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